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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한자, 중국어

[중국어 공부] <뒷모습/背影>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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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공부] <훌륭함, 청춘과의 약속> 해석

 

[중국어 공부] <훌륭함, 청춘과의 약속>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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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공부] <자신을 위해 씨앗을 뿌려라/为自己播下一粒种子>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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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공부] 숙어 정리(성어, 관용어, 헐후어, 속담) [중국어 공부] 숙어 정리(성어, 관용어, 헐후어, 속담) ◆ 성어 1. 兵不血刃 칼날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다. → 무기를 쓰지 않고 이기다. e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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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부친을 본 지가 이미 2년이 넘었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그 해 겨울,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었다. 바로 설상가상의 날이어서 나는 북경에서 서주까지 상 때문에 부친을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서주에 가서 아버지를 보았는데, 마당에 어질러진 물건들을 보시고는 또 할머니 생각에 절로 눈물을 주르륵 흘리셨다. 아버지는 “일이 이미 이렇게 됐으니 슬퍼할 필요 없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길 없겠니!”라고 말씀하셨다. 집에 돌아와서 저당을 잡혀 돈을 마련해 아버지의 빚을 갚았고, 또 돈을 빌려 장례를 치렀다. 그동안 집안의 광경이 매우 참담했는데 절반은 장례 때문이고 절반은 아버지의 실직 때문이었다. 장례를 마친 후 아버지는 남경에서 일을 찾으려 하셨고, 나 역시 북경으로 돌아가 공부를 해야 하므로 우리는 곧 동행했다.

 

 남경에 도착했을 때, 친구가 있어서 놀기로 약속을 하게 돼 하루를 머물렀다. 둘째 날 오전에는 강을 건너 푸커우에 가서 오후에 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가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일이 바빠서 나를 배웅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여관에서 안면 있는 심부름꾼에게 나를 데리고 함께 가라고 거듭 당부하셨다. 아주 자세히. 하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안심하지 않았다. 심부름꾼에게 부탁하는 것이 염려됐기 때문에 꽤 한참 망설였다. 사실 나는 그 해 이미 스무 살이었고, 베이징에 이미 두세 번 다녀봤으며, 뭐 그리 걱정할 것이 없었다. 아버지는 잠시 주저하다가 끝내 직접 다를 데려다주시기로 결정하셨다. 나는 몇 번 아버지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권했지만 아버지는 단지 “괜찮다. 그들을 못 믿겠구나.”라고 말했다.

 

 우리는 강을 건너 역에 들어섰다. 나는 표를 샀고, 아버지는 짐을 지키느라 바빴다. 짐이 너무 많아서 짐꾼에게 소정의 돈을 주어야만 지나갈 수 있었다. 아버지는 또 그들과 흥정하기 바빴다. 나는 그때 정말 총명했다. 아버지가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해 내가 참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침내 가격 흥정을 했고, 나는 차에 태웠다. 아버지는 나에게 차문에 가까운 자리를 잡아주셨다. 나는 아버지가 나에게 주신 자주색 털외투를 자리에 깔았다. 아버지는 내게 조심히 갈 것을 당부했고, 밤에는 조심하고, 감기 걸리지 않도록 하라고 하셨다. 또 심부름꾼에게 나를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속으로 아버지의 어리숙함을 비웃었다. 그들은 돈만 알아서 그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헛수고인데.

 

 “아버지 가보세요.” 아버지는 창밖을 바라보시더니 “내가 가서 귤을 사 올 테니 너는 여기 있거라. 어디 가지 말고.”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저 쪽 플랫폼 난간 밖에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손님들을 기다리는 것을 봤다. 저 쪽 플랫폼으로 가기 위해서는 철로를 넘어야 하고 뛰어 내려갔다가 올라가야 했다. 아버지는 뚱뚱하기 때문에 저 쪽으로 가는 것은 당연히 힘든 일이었다. 내가 가려했으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가게 했다. 나는 그가 검은 천의 작은 모자를 쓰고 남색 두루마기에 검정 마고자를 입고 비틀거리며 철도가에 가서 천천히 몸을 내밀어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철도를 가로질러 그쪽 플랫폼에 오르려고 하니 쉽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두 손으로 위로 기어 올라가 두 발을 다시 위로 올렸는데 아버지의 뚱뚱한 몸을 왼쪽으로 약간 기울이면서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이 순간 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봤고. 눈물이 아주 빠르게 흘러내렸다. 나는 급히 눈물을 닦았다. 아버지가 볼까, 다른 사람이 볼까 두려워서. 내가 다시 밖에서 보았을 때, 아버지는 이미 주황색 귤을 안고 되돌아오고 있었다. 철도를 건널 때, 아버지는 먼저 귤을 땅에 놓고, 자신은 천천히 내려가 귤을 안고 가셨다. 이 쪽에 도착했을 떼, 나는 서둘러 가서 아버지를 부축했다. 아버지와 나는 함께 차에 올라 타 귤을 내 가죽 외투 위에 모두 내려놓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시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셨는지 잠시 후에 말씀하셨다. “나는 가마. 거기 도착해서 편지할게!” 나는 아버지가 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몇 걸음 가시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말했다. “들어가. 안에 사람 없을 때.” 그의 뒷모습이 사람들 사이사이에 뒤섞여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때 나는 다시 들어와 앉았고, 눈물이 또다시 흘러내렸다.

 

 최근 몇 년 동안 부친과 나는 동분서주했다. 집안의 광경은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밖으로 나가 생계를 도모하며 혼자 버텼고, 많은 큰 일을 했다. 노년기에 이렇게 쇠약해질 줄 어찌 알았겠는가? 아버지는 눈에 띄게 상심하여 자연히 감정을 스스로 억제할 수가 없었다. 우울한 감정 속에서 자연히 밖으로 표출해야 했고, 집안의 소소한 일들은 종종 그의 화를 건드리곤 했다. 아버지가 나를 대하는 게 예전과는 달라졌다. 최근 2년 간 보지 못해서 아버지는 마침내 나의 안 좋은 점을 잊어버리셨지만, 다만 나와 나의 아들을 늘 걱정하셨다. 내가 북경에 온 후에, 아버지는 나에게 편지 한 통을 쓰셨고 편제에 “내 몸은 평안하다. 다만 팔이 몹시 아픈 데다가 젓가락을 들고 붓을 들 때 많은 불편을 겪으니 아마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나 보구나.”라는 말을 하셨다. 나는 이외의 것을 읽었는데, 반짝이는 눈물 속에 뚱뚱하고 남색 두루마기에 검정 마고자를 입으신 뒷모습을 보았다. 아, 내가 언제 다시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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